|
(전략. 야공만담(野功漫談) 第 1 回 참조)
.
.
.
"에잇...음식이 나오는거냐, 마는거냐? 박화니(朴華尼)도 아니고 뭐가 이리 굼뜨는게야?”
죄박수가 짜증섞인 목소리를 내뱉자 경월대사를 비롯한 일행의 눈길이 다시 모아졌다.
"삼성곡(三星谷)의 기재 박화니를 말씀하시는구료. 허허.....빈승이 보기에도 젊은 친구의
신중함이 기이할 정도이더이다."
경월대사가 껄껄 웃으며 되받자 죄박수는 더욱 인상을 찡그리며 내뱉았다.
"신중함이 다 무어란 말이오? 대체 비무대에서 한초 한초를 겨룰때마다 운기조식을 한답시고
시간을 끌어대니 보는 이들이 모두 답답해하지 않소!"
죄박수가 이토록 욕을 해대는 박화니는 삼성곡의 일진고수로 강호에서 그를 부르는 별호는
법허린(法許隣)이라 했으니, 그는 무공의 강함보다 비무에서 상대와 일초를 겨룰때마다
시간을 청하고 특유의 운기조식을 취하는 기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의 특이한 운기조식은 좌우 양수(兩手)의 수갑혈(手甲血)과 견주혈(肩株血)을 번갈아
점혈하고 그 기운을 역행시켜 검 끝으로 보낸 다음, 투구를 들어 미간과 정수리를 스쳐
비강(鼻腔)으로 그 정기를 흡입하여 마침내 검으로 바닥에 십자 무늬를 그리며 마치니,
그의 투구 안쪽에는 일시적으로 공력을 증진시키는 향취를 발하며, 박화니가 아닌 타인이
그 향취를 접하면 맹독으로 화하여 내상을 입고 일시 혼절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각설하고, 세인들의 난투도 아닌 무림인의 정식 비무에서 이를 일일이 따지고 들자니
구차스럽고, 잠자코 지켜보고 있자니 그 심기가 뒤틀려 냉정함을 유지키 어렵다는 것이
그와 일전을 겨뤄본 무림인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본좌 이름 석자를 걸고 다음 삼성곡과의 비무에서 그 어린 고양이놈을 빈볼난무(賓乶亂武)
로 요절낼 것이오"
"허허.....그러실 것 까지야.....허허....."
두 장문과 당주가 말을 주고받는 사이, 점소이가 음식을 내오기 시작했다.
"자 그럼 요리나 드십시다."
투인수의 당주와 제자들이 식사를 시작하자 객잔의 팽팽하던 긴장감은 어느 정도 수그러들어
객잔의 다른 손님들도 이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왁자지껄 자신들의 접시를 비우기 시작했다.
"그럼.....얘들아 우리도 공양을 하자꾸나."
경월대사의 뒤를 이어, 봉타이와 재우이도 품에서 젓가락을 꺼내어 음식을 들기 시작했는데,
잠자코 고기를 씹던 죄박수의 눈꼬리가 치켜져 올라갔다.
"재우이! 지금 손에 든 게 무엇이냐?"
"손....? 소승, 젓가락을 들고 있습니다만....."
"누가 젓가락인줄 모르느냐? 젓가락 끝에 달린 구슬같은 그것은 무엇이냐?"
"아아, 이것은 고굴(高屈)이라 부르는 야명주(夜明珠)의 일종입니다. 소승 밤눈이 어두운
야맹증이 있어 야행탁발(夜行托鉢)시에 쓰는 물건....."
"에잇, 그 고굴인지 뭔지 하는 것에 눈이 부셔 음식을 제대로 넘기기가 어렵지 않느냐? 객잔의
나무젓가락은 뒀다 무엇에 쓰고 그런 희한한 물건으로 본좌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냐?"
"그, 그것은....."
"가만히 있거라, 재우이. 죄당주, 제자들에게 수행중 세속의 젓가락을 쓰지 말라고 한 것은
빈승이니 저를 탓하시구료. 다만, 공양은 마쳐야 하니 당주께서 너그러이 봐주시면 고맙겠소."
"봐 줄 것이 따로 있지, 무림의 새까만 후배가 일파의 장문이 식사하는데 그 눈앞을 어지럽힌단
말이오? 당장 저 요상한 물건을 치우도록 명해주시오!"
".....하는 수 없구나. 재우이, 젓가락을 집어넣거라."
"하.....하오나, 장문인"
"어서 집어넣거라. 너희들은 젓가락이 없어도 음식을 먹는 데는 문제가 없지 않느냐?"
".....예, 명을 따릅니다."
죄박수는 야비한 웃음을 지으며 좌우의 지대형과 용태액에게 눈길을 주었다. 두 제자는 무림의
태산북두인 경월대사를 저희들의 당주가 위압하는 모습이 되자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가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 소승, 장문의 명을 받들어 잠시 실례를 하겠습니다."
젓가락을 품에 넣은 재우이가 포권을 하자 죄박수와 두 제자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리던 재우이의 눈빛이 빛나는 순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곰은 쑥과 마늘을 곁에 두더라도 썩은 쥐는 먹지 않으며....군자는 만 가지 악행도 정(正)으로
되돌리니....끝없는 건곤일척의 하늘에서 황홀경에 머무르리라....무(無)!한(限)!홀(惚)!두(逗)!"
재우이가 읊조린 구결이 끝나자마자 그의 앞에 놓인 그릇에 담긴 음식들이 순식간에 공중으로 뻗어
올라갔다. 마치 용오름이 솟구치듯 채무침과 탕이 공중에 떠올라 다시 포물선을 그리고 떨어지니,
그 음식들은 국물 한방울 남김없이 재우이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워낙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라 죄박수와 두 제자는 물론 객잔의 모든 손님들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니,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경월대사만이 은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재우이는 한입에 머금은
음식들을 씹어넘기며 죄박수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고, 봉타이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가지런한 치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죄박수의 눈에 뜨인 것은 상 밑에서 은연중에 솟아나오는 백색의 안개였다.
재우이는 상 아래에 손을 짚고 장력을 방출하여, 음식을 공중으로 날려버린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정신을 차린 지대형과 용태액이 발끈하며 일어나 삿대질을 했다.
"뭐하는 짓이야, 경망스럽게! 당주님 앞에서 그런....."
"당장 당주께 사죄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
"닥치지 못해! 둘 다 앉거라!"
"하.....하오나, 사부님...."
죄박수가 호통을 날리자, 지대형과 용태액은 풀죽은 표정으로 다시 털썩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죄박수 역시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입술을 질끈 깨문 채 분노한 표정이 역력했다.
역시나 방금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죄박수 한 사람 뿐이었다. 밥상
아래서 장력을 방출하여 음식을 공중으로 띄우는 재주는 반 갑자 이상의 내공을 가진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보일 수 있는 재주였다. 그러나, 상 위의 다른 그릇들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목표로 한 그릇
만을 노릴 수 있는 제기력(制器力), 그릇은 얼어붙은 듯 제 자리에 두고 음식만 고스란히 띄워올리는
무서운 완급조절(緩急調節) 능력은 그야말로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재주였다.
애제자 둘 모두가 상대의 기량을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방금 전까지 스스로
조롱한 애송이 수행승이 눈앞에서 무림 최고수에 버금가는 절정 무공을 보란듯이 시전했다는 점에서
죄박수의 분노는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를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죄박수를 노하게 한 점은 투인수의 또 다른 두 제자인 욱유민(郁有敏)과 재복희(材福熙)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금방 재우이가 펼친 무한홀두의 초식은 두산사의 독문무공이 아닌지라, 욱유민과
재복희 또한 문중에서 수련을 거듭하고 있는 무공이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기량이 부족한지라,
초식의 정묘함을 살리지 못하고 주화이야(走火二也)에 빠지기 일쑤이니 그 둘이 만약 이 자리에서
같은 무공을 썼다면 음식을 입에 넣기는 커녕 제 스승과 자신의 머리에 음식을 쳐 부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섯 무인들은 다시 음식을 들기 시작했으나, 죄박수와 두 제자는 음식의 맛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윽고, 음식 그릇들이 모두 비워지고 점소이가 차를 내오자, 죄박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경월대사, 이번 북경비무의 8대 문파 대표를 손수 뽑으셨다 들었는데 문제가 있지 않소?"
"빈승이 뜻이 담겨 있는것은 사실이나 무림맹 쾌비오와 충분히 상의하여 결정한 사안이오만.....
당주에게는 마음에 드시지 않았던 모양이구려?"
"당연하지 않소! 본좌 그리 어이없는 명단은 본 적이 없소. 어찌하여 우리 만년루욱희(萬年漏昱熙)
벽경수(壁經收)가 빠진 것이오? 설명해 보시구려!"
"허허.....빈승이 금번 선발에서 맹호곡(猛虎谷) 석민아(錫珉兒)와 이굴파(理窟派) 금별명(金別名)을
빼놓아 수 차례 비난을 들었소이다만, 벽경수라는 성명은 처음 듣는구려. 그가 누구인지 알려주시겠소?"
".....! 무림을 대표하는 투인수의 만년루욱희 벽경수를 모른다는게 말이 되오?! 벽경수를 빼놓고
귀 문중에서 선발한 고제투(高制鬪) 따위보다 훨씬 그 기량이 높질 않소!"
죄박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조용히 찻잔을 바라보던 봉타이가 고개를 치켜들고 끼어들었다.
"당주께선 말씀이 과하십니다. 지난주의 비무에서도 벽경수가 저를 협살(挾殺)하려다 패퇴하는 등
수 차례 실수를 거듭하자 투인수 남비관중(藍悲觀衆)과 유령회원(幽靈會員)이 나서 욕을 퍼붓고
상누무마당(常樓舞魔堂)에 온갖 비난의 방을 써붙이더니 이제 와서 무슨 말씀이오이까?"
".....! 네가 감히.....!"
죄박수의 분노가 극에 달해 상을 내리치자, 상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순식간에 여섯 무인들이
기립하여 대치하자 객잔 내부는 아수라장이 되었으며, 손님들은 앞다투어 밖으로 뛰쳐나가기 바빴다.
"빈승, 지금까지 당주께 예의를 갖추었으나, 이번만은 제자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하오이다.
무림인은 말보다 기량으로 대화를 나누는 법. 굳이 시비를 가리고 싶다면 밖으로 나가시는 것이
좋겠소이다."
경월대사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그러나 형형한 눈빛으로 읖조렸다.
"흥! 기다렸던 바요. 내 오늘은 금년 패난투(覇亂鬪)에서의 분패를 되갚아주겠소. 밖으로 나갑시다!"
여섯 무림인이 밖으로 나서니 주변은 이미 이들의 결투를 보기 위해 몰려든 행인들로 인산인해였다.
.
.
.
.
.
(계속)
* 작가 주 *
1. 상누무마당(常樓舞魔堂)
투인수의 현판 뒤켠에 있는 사당으로 무사들의 폐관수련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나, 최근 남비관중과
유령회원의 명령첩, 사령장, 비방문을 붙이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
2. 남비관중(藍悲觀衆), 유령회원(幽靈會員)
투인수(妬姻獸)자금원 골쥐(骨脂)의 수행원들로 투인수 무사들의 수행을 돕기 위해 파견된 인물들.
그 정체는 불명확하나, 비무대 객석 의자에 짚인형들을 세워 무사들의 사기를 북돋거나, 타 문파에
악랄한 욕설을 하여 비무를 방해하는 행동을 하여 무림인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평상시는 가부좌를 틀고 경문을 외우며 속세와의 거리를 둔다.
"달치고(撻恥固)무적(無跡)골쥐(骨脂), 달치고(撻恥固)무적(無跡)골쥐(骨脂), 달치고....."
"달치고(撻恥固)무적(無跡)골쥐(骨脂), 달치고(撻恥固)무적(無跡)골쥐(骨脂), 달치고....."
|
------------------------------------------------------------------------------------------------
이틀동안 야구를 못봤더니....
9연승 뒤에 2연패를 했네요... -_-;;;
두산베어스 곰대 작가 '만루곰런'님의 글 2탄이 나왔습니다. ㅋㅋ
역시 무단 발췌 ^^
Trackback Address :: http://www.bluecatworld.com/tt106/trackback/180
|
|